들어가며

저는 게임을 정말 좋아합니다. 어릴적 부모님이 새벽 일찍 외출하실 일이 있으면, 몇시에 나가시든 문닫는 소리에 눈이 번쩍 떠지고 게임할 생각에 설레었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3D 게임이 대세가 되고, 제가 지독한 3D멀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초등학교 4~5학년쯤 친구들과 서든을 하러 PC방에 갔다가 15분 만에 극심한 두통과 멀미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오버워치가 롤의 PC방 점유율을 넘어섰던 전설적인 시절 두근거리며 연희동 아지트 PC방에 호기롭게 들어갔지만 30분 정도 플레이하다가 결국 토하고 포기했습니다. 스타와 롤, 이터널리턴을 베이스로 토탈워, 림월드, 크루세이더킹즈, 유로파, 코에이삼국지만 주구장창 돌리던 저에게 라이브러리 속 세키로와 엘든링은 머나먼 존재처럼 보였습니다.
게임을 이렇게 좋아하는데 몸 때문에 못 한다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잘못된 몸에 갇힌 영혼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극복하여 대부분의 3인칭 게임을 패드로 3~4시간 정도 무리 없이 플레이할 수준까지 왔습니다. 20년 동안 시도하지 않은 방법이 없었고, 여기서 오랜 세월 깎아온 저만의 3D 멀미 극복 노하우를 열어보고자 합니다. 결론은 패드를 통한 일정 수준의 거리 확보 + 초반에는 화면 이동에 따라 고개도 같이 움직이는 방법을 통해 적응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나온 3D 멀미 해결법은 모조리 해봤습니다
| 방법 | 제 체감 |
|---|---|
| 모션 블러·카메라 흔들림 끄기 | 거의 효과 없음 |
| 화면 중앙 십자점 붙이기 | 처음에 조금 나은 듯하지만 오래 가지 못함 |
| FOV (시야각) 조절 | 거의 효과 없음 |
| 카메라 회전 속도 낮추기 | 어느 정도 효과 있지만 플레이에 지장있고 오래가지 못함 |
물론 경미한 어지러움 정도를 느끼시는 분들이면 이런 설정이 도움이 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처럼 15분만에 구토감을 느끼면서, 억지로 버티면서 붙잡고 1시간 정도 하면 두통과 몸살 기운 등 온몸이 박살나는 듯한 괴로움까지 함께 느껴지는 분들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는 방법입니다. 위 방법들은 딱 30분에 토할 걸 1시간만에 토하게 만들어 주는 수준이었습니다.
왜 멀미하는지를 생각하니 답이 단순해졌습니다
저는 3D멀미에 대한 논문까지 읽으면서 해결책을 고민했습니다. 3D 멀미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 중 하나는 시각과 전정감각의 불일치입니다. 즉, 게임 속 시야가 회전하고 그에 몰입하게 되면 뇌는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는데, 실제 균형감각을 담당하는 전정기관은 가만히 있습니다. 이렇게 움직임을 감지하는 전정기관과 눈이 서로 다른 정보를 인식하고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이 대표적인 설명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여기서 해결 방법도 두 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1. 실제로 내 몸을 움직이거나,
2. 뇌가 나는 정지한 상태라고 인식하게 만들거나.
방법 1. 화면이 돌 때 고개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게임 화면이 도는 방향으로 저도 고개를 살짝 움직였습니다. 왼쪽이면 왼쪽으로 움직였습니다. 정식으로 검증된 치료법은 아니지만 저에게는 많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화면만 움직이고 몸은 완전히 멈춰 있는 상태보다 실제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만들어주는 쪽이 훨씬 편했습니다. 물론 계속 이렇게 게임하면 목이 힘들기 때문에, 이 방법은 몸이 3D 화면에 익숙해질때까지 쓰는 과도기적 방법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방법 2. 패드로 모니터에서 멀리 떨어졌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방법 중에 작은 인치의 모니터를 사용해보라는 말이 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어요. 왜 작은 인치를 쓰면 멀미가 낫는가에 대해서는, 뇌가 화면 속 움직임을 내 움직임이라고 받아들이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핵심은 작은 화면 자체가 아니라, 모니터 프레임과 그 너머 진짜 정지해 있는 벽이나 책상 등의 배경을 함께 시야에 담아서, 실제 내가 움직이는게 아니라 작은 프레임 속의 움직임을 보고 있다고 계속 생각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화면이 너무 크거나 가까이에 붙으면 시야 대부분이 게임으로 꽉 차서 뇌가 혼동하기 때문에, 프레임을 줄여서 정지하고 있는 배경을 함께 인식시키든지, 아니면 화면과 멀리 떨어져서 배경을 함께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32인치 모니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모니터 크기를 줄이는 대신 값싼 패드를 구매하여 의자를 뒤로 빼고 멀리 앉아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여기에 더해, 방법1인 고개 움직임까지 함께 사용했습니다. 패드 + 화면 거리 두기 + 고개 움직임의 삼위일체 조합이 제 20년의 고민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영광스럽던, ‘싸펑 3시간 했던 날’

이 방법을 처음 제대로 적용한 게임이 사이버펑크 2077이었습니다. 게임을 하다가 시간을 확인했는데 3시간이 지나 있었는데, 조금 메슥거리긴 했지만 몸이 아픈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라이브러리 속에 사놓고 3D멀미로 하지 못했던 게임이 10개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아, 나도 트리플A 대작들은 플레이하겠구나 하는 희열이 차올랐습니다. 이후에는 훨씬 쉬웠습니다. 3인칭 RPG들은 하나씩 그냥 플레이하기 시작했고, 결국 하나씩 엔딩을 봤습니다.
억지로 버티면서 몸을 적응시키는 것은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가끔 인터넷에 그냥 계속 참으면서 하다보면 괜찮아진다는 말들이 있는데, 이런 분들은 그냥 조금 메슥거림을 느끼는 정도일 겁니다. 저처럼 극도의 3D멀미를 겪는 분은 절대 그냥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저도 억지로 버텨봤던 적이 많습니다. 세키로를 할 때는 토마토 정신으로 토하면서 해보자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그런데 이게 괜찮아지는게 아니라, 멀미가 심해지면 두통뿐 아니라 몸살처럼 온몸이 아팠고, 나중에는 3D 게임을 실행하기만 해도 “또 아프겠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마치 시계태엽오렌지처럼 게임 화면만 봐도 고통과 괴로움이 연상되면서, 그 좋아하던 게임에 흥미가 식을 정도이기 때문에, 절대 그냥 버티면서 플레이하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환경을 먼저 바꿔보세요.
이제 ‘3인칭+패드’는 거의 괜찮고, 1인칭이거나 키마 플레이는 아직 어렵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3인칭 게임을 3~4시간 정도 편하게 합니다. 4~5시간 넘어가면 약간 멀미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정도면 허리부터 아파서 애초에 게임을 끌 시간입니다. 믈론 카메라가 너무 빠르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게임은 여전히 힘들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팰월드가 그랬습니다. 반대로 스팀덱에서는 그 어떤 게임을 아무리 오래해도 멀미가 거의 없습니다. 작은 화면 주변으로 현실 공간이 항상 같이 보이기 때문인지, 아무리 오래 플레이해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3D 멀미가 정말 심하다면 스팀덱이나 로그엘라이 같은 휴대용 게이밍 기기로 같은 게임을 한번 적응해 나가는 것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만 아직 1인칭 게임이나 키마 플레이는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10분 정도면 느낌이 오고 30분쯤이면 그만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제 3D 멀미 극복은 정확히 말하면 절반의 성공 정도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무리하며
저는 이 방법을 꽤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어디서 한 번 보고 따라 해서 해결한 게 아니라 정말 코흘리개 초딩이 피씨방에서 좌절을 겪은 이후부터 20대와 30대 중반인 현재까지 20년 동안 실패를 겪으며 조금씩 방법을 깎아왔습니다.
3D 멀미 때문에 좋아하는 게임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안타깝고 저는 그 기분을 너무 잘 압니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게임을 나는 몸 때문에 못 하고, 하고 싶어서 산 게임이 라이브러리에 계속 쌓이는 기분. 저처럼 인터넷의 설정 몇 가지로 해결되지 않는 분이라면 몸을 억지로 적응시키기보다 게임 환경 자체를 한번 바꿔봤으면 합니다.
몸을 게임에 맞추지 말고, 게임을 내 몸에 맞춰보세요. 저는 그렇게 지금은 예전에 꿈도 못 꾸던 게임들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그 시작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D멀미로 검색하시어 이 글을 찾아 읽어오신 당신, 감바리마쇼!



